
영화 와일드 씽을 봤다. 강동원과 엄태구, 박지현이 2000년대 혼성 댄스그룹으로 나온다는 설정부터 상당히 독특한 영화였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배우들이 제대로 망가지겠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본편에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코미디에 뛰어든다. 특히 평소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이 촌스러운 의상과 춤, 과장된 무대 연기를 진지하게 소화하는 모습이 웃겼다.
이야기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한때 인기를 누렸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된 혼성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설 기회를 얻고, 흩어졌던 멤버들이 재결합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트라이앵글
트라이앵글은 댄스머신 황현우, 그룹의 센터 변도미, 래퍼 구상구로 구성된 3인조 혼성그룹이다.
과거에는 가요계를 휩쓸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하루아침에 해체됐다. 이후 세 사람은 연예계와 멀어진 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리더 현우에게 트라이앵글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제안이 들어온다. 현우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도미와 상구를 다시 찾아간다.
당연히 세 사람의 사정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다시 가수를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바로 뭉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는 트라이앵글이 무대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일종의 로드무비처럼 보여준다.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가는 길마다 사고가 터지고, 과거의 악연까지 다시 나타나며 상황이 계속 꼬인다.
강동원이 이렇게까지 망가져도 되나
와일드 씽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강동원의 변신이다.
강동원이 연기한 황현우는 과거의 인기를 아직 완전히 놓지 못한 인물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자신이 여전히 무대의 중심이라고 믿으며, 트라이앵글의 재결합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다.
문제는 말과 행동이 계속 어긋난다는 것이다. 본인은 굉장히 진지한데 주변에서 보면 상당히 우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강동원은 멋있게 보이려는 욕심을 거의 내려놓고 황현우의 허세와 절박함을 그대로 밀어붙인다. 춤과 헤어스타일, 표정까지 모두 과장돼 있는데 배우가 진지하게 연기할수록 더 웃겼다.
단순히 외형만 우스운 캐릭터는 아니다. 현우는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절박하다. 그 절박함이 때로는 민망하고 우스워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완전히 가볍게만 볼 수는 없었다.
엄태구의 랩은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엄태구가 맡은 구상구는 트라이앵글의 래퍼다.
엄태구 특유의 낮고 거친 목소리로 랩을 한다는 것부터 이미 웃음이 생긴다. 평소에는 무겁고 강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배우라서, 촌스러운 가사와 안무를 진지하게 소화하는 모습의 간격이 컸다.
상구 역시 그룹 해체 이후 삶이 잘 풀리지 않았다. 솔로 활동을 시도했지만 빚만 남았고, 다시 찾아온 무대가 절실한 사람 중 하나다.
엄태구는 대사를 크게 과장하기보다 특유의 말투와 표정으로 웃긴다. 다른 배우들이 빠르게 치고 나갈 때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장면도 좋았고,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의 어색한 호흡도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박지현이 완성한 2000년대 걸그룹 센터
박지현은 트라이앵글의 센터 변도미를 연기한다.
스타일링부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여성 가수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표정과 손동작까지 당시 음악방송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재현했다.
도미는 그룹 해체 이후 재벌가 며느리가 됐다. 현우와 상구처럼 당장 재기가 절실해 보이는 처지는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굳이 과거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도미 역시 현재의 삶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인물은 아니다. 잊고 지냈던 무대와 멤버들을 다시 만나면서 자신이 가장 빛났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박지현은 세 사람 가운데 상대적으로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강동원과 엄태구가 강하게 망가질 때 적절하게 받아주면서도, 무대에서는 제대로 센터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오정세가 등장하면 장르가 한 번 더 바뀐다
오정세가 연기한 최성곤은 과거 트라이앵글의 라이벌이었던 발라드 가수다.
최성곤 역시 한때는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연예계에서 사라진 인물이다. 20년이 지난 뒤에는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정세는 장발과 과장된 표정, 특유의 진지한 말투로 등장할 때마다 장면의 분위기를 가져간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인데 본인은 한 번도 자신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트라이앵글과 대립하는 인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최성곤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다시 한 번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 한다. 웃음을 담당하면서도 영화의 씁쓸한 정서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2000년대 가요계를 제대로 패러디했다
와일드 씽의 가장 큰 재미는 2000년대 가요계에 대한 패러디다.
당시 유행했던 혼성그룹의 구성부터 노래와 안무, 뮤직비디오, 방송 의상까지 상당히 구체적으로 재현했다. 일부러 촌스럽게 만든 장면들이 많지만, 그 시절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질 만하다.
영화 속 노래도 대충 만든 코미디용 음악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가사와 콘셉트는 과장돼 있지만 실제로 당시 음원 차트에 있었을 것 같은 묘한 완성도가 있다.
처음에는 웃기려고 만든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반복해서 나오다 보니 후렴구가 기억에 남았다. 배우들이 실제 무대를 준비한 만큼 퍼포먼스 장면도 생각보다 제대로 만들어졌다.
다만 2000년대 가요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면 일부 농담은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당시의 스타일과 연예계 분위기를 알고 있을수록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배우들의 조합이 좋았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흩어졌던 멤버들이 다시 모이고, 가는 길에 갈등과 사건을 겪은 뒤 마지막 무대를 향한다. 재기를 소재로 한 코미디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구성이다.
인물들의 관계도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빠른 전개와 코미디를 위해 사용된다. 조금 더 감정적인 장면을 기대했다면 후반부가 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와일드 씽이 끝까지 볼 만했던 이유는 배우들이다.
강동원의 허세, 엄태구의 어색한 진지함, 박지현의 화려한 센터 이미지, 오정세의 과장된 감정 연기가 서로 잘 섞였다.
배우들이 적당히 연기했다면 유치하게만 보였을 설정인데, 모두가 끝까지 진심으로 밀어붙여 영화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와일드 씽 후기, 편하게 웃으며 볼 만한 한국 코미디
와일드 씽은 치밀한 이야기나 새로운 형식으로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다.
2000년대 가요계에 대한 향수와 배우들의 망가지는 연기, 계속해서 사고가 벌어지는 소동극을 합친 작품이다.
코미디의 타율은 장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강동원과 엄태구가 춤추고 랩하는 모습만으로도 기존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 많았다.
박지현은 세 배우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았고, 오정세는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분량을 확실하게 가져갔다. 네 배우의 조합을 보는 재미가 가장 큰 영화였다.
엄청나게 잘 만든 코미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과장된 설정이 많고, 일부 웃음은 사람에 따라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어떤 영화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한국 코미디를 찾는다면 무난하게 볼 만하다.
특히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가요계를 기억하거나,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만족도가 더 높을 것 같다.